젖은 솜처럼 몸이 무거운, 그런 오후가 있다. 업무가 많았고 날씨는 꿉꿉하다. 배에 포만감이 가득하지만 마음은
아니다. 피부는 번들대고 끈적하다. 지하철에서 부득이하게
살이 맞닿은 이들에게 분노가 치민다. 바야흐로 여름이다. 불쾌지수가
상승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더운 날은 그렇다. 모든 것들이 귀찮고 더부룩하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더 섹시해지는 구간이 있으니(말해 무엇 하나) 그것은 바로 섹스다.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자신 있다. 오늘은 여름날의 섹스에 대해, 그 짙고 무더운 에로티시즘에 대해 적어본다.
한 여름밤의
꿈
“내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스-페셜한 방법을 알고 있는데 궁금하지 않아?”
“우리 냉장고 문 열어 두고 해볼까?”
초복이 다가올 때쯤 수많은 섹스 칼럼니스트들이 한랭의 섹스 팁을 쏟아낸다. 식약처나 환경보존단체에서 보면 깜짝 놀랄 내용(얼음과자는 입으로
먹는거고 냉장고는 빨리 닫아야 하거늘! AET헴!)이 즐비하게 쏟아지는 걸 보면 확실히 여름은 섹시한 계절인가 보다.
나만 그런 게 아닌 것이, 구글에 섹스를
검색하는 빈도는 다른 계절에 비해 여름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한다. 왜일까? 낮이 길어지고 더 많은 햇볕을 쬐었던 것이 한몫할 것이다. 햇빛은
다량의 세로토닌을 만들어내고 세로토닌은 열정과 흥분을 만들어낸다. 겨우내 우울하고 웅크려졌던 우리의
육체는 비로소 여름에 만개한다.
루프탑 위에서 만끽하는 한 잔의 미도리 샤워로 체온을 낮춘다. 그리고 딱 그 순간에 낮아진 체온만큼 타인에 대한 심리적 장벽도 같이 낮아진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 가장 좋은 계절이기도 하다.

한여름밤의
꿀(X) 한 여름밤의 꿈(O)
그뿐인가, 무거운 뙤약볕을 피해 입은 반바지와
민소매는 정직하고 명료하다. 심리학자 니콜 프로즈는 “사람이
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으면 서로의 사인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그렇기에 노출이 많은 여름에는 이성을 살피게
될 수밖에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지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그야말로 한껏 달아오른
계절이 바로 여름이다. 여름 찬양에 문단의 반을 소비했지만 어쩔 수 없다. 여름은 섹시하다.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보증한다. 그 많은 계절 중 ‘한 여름밤’을
콕 집어 불멸의 희극을 만들었으니까.
체취에
취하다

체취가
느껴지는 차일디시 감비노스러운 흑백사진.jpg
애인의 체취와 호흡은 여름밤에 더욱 농밀해진다. 습기가
뿌옇게 서리고 촉촉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맞닿은 콧방울부터 깍지 낀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에 모두 땀이 흥건하다. 상대의 더운 입김이 느껴진다. 그리고 온
방 안이 상대방의 냄새로 가득 찬 듯하다. 절정에 올랐을 때의 피부는 마치 수막(水膜)에 덮인 듯 미끄럽다. 한참을
어루만지며 생각한다. 이대로 잠시 죽어도 괜찮겠다고.
그중에서도 체취는 여름밤에 더욱 특별해진다. 체취는
곧 우리 편에 대한 구별이다. 사랑이라는 영역에서 피아식별을 가능케하는 가장 확실한 잣대다. 면역 관련 유전자가 자신과 다른 인간에게 호감을 느끼게끔 우리는 진화했다고 카더라. (궁금하면 검색창에 ‘체취, 호감’이라고 적어보시라) 인간의 땀 분비샘이 다른 영장류보다 많은 건 이
때문이 아닐까.
여름은 그토록 원시적이고 원초적이다. 태고의
모습을 가장 충만하게 만끽할 수 있다. 분위기에 취하고 체취에 더 취한다.
더티
러브 : 너에게만 허락한 모습

서로의
체취에 취한 여름밤이 되시길.jpg
분명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깔끔하고 정갈한
섹스를 좋아할 수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여름날의 무더움이 무거움으로 느껴지겠지. 그러나 가끔은 땀을 한 바가지 쏟아내는 섹스를 해보길 권장한다. 그때는
애정과 애착 너머의 것을 마주하게 된다. 섹스는 때로 고독, 침묵, 극단과의 대면, 즉 죽음과 대면케 한다. 그리고 그걸 보여줄 수 있는, 공유할 수 있는 상대에게 처절한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
모든 섹스가 깨끗하고 보송보송할 필요는 없다. 섹스가
좋은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나의 가장 원시적인 모습을 상대와 점유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 안도감과
유대감은 여름에 가장 크게 증폭될 것이다. 문대며 질척이며 더운 숨을 토할 여름밤의 섹스를 기원한다.
여름밤, 애인과 발가락을 맞대고 와인을 마실
때 듣기 딱 좋은 재즈를 첨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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