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가 정말 꼴 뵈기 싫을 때도,
함께 맞춰볼 때는 '어머 죽어도 좋아'라는 게...”
-희극인 안영미
그 답다. B급정서 가운데 핵심을 꿰뚫는다. 말을
나눌 땐 미워 죽겠던 웬수가 숨을 나눌 땐 은인으로 둔갑하는 마법. 일전에 은평구에 사시는 정 여사님(필자의 외할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겉만 봐서는 통 모른다. 속이 솔찬히 꽉 찼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혀. 그게 만두랑 사람의 공통점인겨.”
오늘 칼럼은 바깥이 아닌 속에 대해 적어보겠다. 유사이래 가장 유서 깊은 딜레마, 속궁합에 대하여.
살결만큼 중요한 심결

살이랑 마음이랑 뭣이 중헌디.jpg
국어사전에 등재된 속궁합의 정의는 이렇다.
'혼인할 남녀의 사주를 오행에 맞추어 보아 부부로서의 좋고
나쁨을 알아보는 점'.
사주와 오행과 점괘라니, 참으로 케케묵었다. 그러나
곱씹을수록 신선하다. 선조들은 속궁합을 그저 ‘성적 어울림’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역술을 바탕으로 한 연인간의 정신적 조합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다. 놀랍지 않은가? 이조시대부터 그들은 대체 뭣이 더 중헌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부딪히는 살결보다 동(動)하고 통(通)할 심(心)결을 더 중히 여겼다.
줄리와 에밀리 이야기

연트럴파크에 앉은 줄리와 에밀리.jpg
궁합에 있어 결은 매우 중요하다. 결이라니? 말하자면
섹스의 취향이다. 두 사람을 예로 들어보겠다.
줄리는 투사다. 타란티노의 영화를 좋아하며 여름에도 닥터마틴 워커를 즐겨 신는다. 홀로 정처없이 떠도는 국내여행을 좋아한다. 곰팡이 냄새나는 반지하
술집에서 혼자 칵테일을 마시는 게 취미다.
에밀리는 몽상가다. 마블과 디즈니를 좋아하며 윤기나는 테슬로퍼를 즐겨 신는다. 친구들과 함께 다달이 모은 월급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게 낙이다. 볕
좋은 카페에서 혼자 문학을 읽는 걸 즐긴다.
그런 둘이 만났고 깊게 빠져들었다. 줄리와 에밀리는 영화를 좋아하고, 가죽소재의 신발을 즐겨 신으며 여행을 다니고, 혼술 혼밥을 즐긴다는
점에서 매우 닮았다. 밤새 얘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줄리는 에밀리의 조바심을 빼앗아 주었다.
그런데 말만큼 몸이 잘 맞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둘은 유독 섹스에 있어서는
잘 맞지 않았다. 에밀리는 밝고 청명하며 환희로 가득찬 섹스를 꿈꿨고 줄리는 섹스를 통해 죽음을 유보하는
감정, 즉 멜랑꼴리를 추구했다.
에밀리는 섹스 내내 간지럽고 달콤한 웃음을 입에 머금었고 줄리는 시종일관 미간에 힘을 주며 퇴폐성의 끝자락을 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가 길었지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간단하다. 섹스에도 결이 있다. 그것은 정신적 교감이 잘 된다거나, 취향이 같다거나 하는 공통분모가 아니다. 그것은 섹스를 통해 얻고자하는
감성의 차이다. 충만한 원기를 느끼고 싶은 사람도 있고, 다시없는
퇴폐의 늪에 빠지고 싶은 사람도 있다. 이런 성향은 잘 드러나지 않으며 상대방에 따라, 그리고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때문에 상대의 평소 취향이나
성격을 통해 쉽게 섹스의 결을 짐작해선 안 된다.(척 보면 안다든가, 난 사람 잘 본다든가 그런거 다 허세다) 그 사람이 섹스에 있어 어떤 결을 가지고 있는지는
함께 밤을 지새우기 전까지는 모른다.(심지어 본인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대방이 섹스에 있어 어떤 감성을 지닌 사람이고 그를 통해
어떤 결과를 얻고 싶어하는지에 대해 얘기해보자. 그런 얘기를 하기 아직 부끄러운 사이라면 뭐 화이팅이다.)
불확실성은 인생의 묘미

속궁합은 사람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나에게로떠나는여행.buzz
물론 신체적으로 중요한 궁합도 있다. 섹스를 원하는 빈도수가 상호간에 얼마나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를 꼽을 수 있겠다. 사시사철 달리고 싶어하는 마라토너와 긴 나날 중 딱 한 번
전력으로 달리고 싶어하는 단거리 주자는 같이 운동하기 어렵다. (물론 이 예시는 이 둘이 오래오래 함께
달리고 싶은 연인일 때를 가정해서 하는 말이다)
이 외에도 상대의 체취가 이상하리만큼 신경 쓰인다든가, 체급 차이가 너무 심하다든가, 신음소리가 웃기다든가 신체에 국한된 궁합의 나쁜예를 꼽자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속’은 신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성과 감성이 있다. 어쩌면 몸의 궁합보다 정신적인 궁합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지도 모른다.(어쩌면
전부일지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원하고 추구하는지 확실히 아는 것이다.
속궁합에 대해 적은 글인데, 섹스가 잘 맞기 어렵다는 마무리가 된 것 같아 서글프다. 그렇다. 원래 속궁합이란 건 잘 맞기가 힘들다.(만약 당신이 오르가즘 펑펑 행복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그것은 기적이고 행운이다. 만끽하길!) 사랑하는 대상이 나와 맞지 않다는 건 언제나 시리고
아프다. 그러나 언제나 희망은 있다. 우리의 육체는 볼트와
너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빈도수의 상이한 차이를 제외한다면 육체는 노력의 영역이며 정신은 대화의 영역이다.
섹스 전,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가 나와 속궁합이 잘 맞을지에 대해 궁금해한다. 사전 파악을 위해 한잔의 와인과 선곡표를 놓고 질의응답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인간이 원래 그렇다. 시도해 보기 전에 결과를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상이하다. 그 부확실성을 인생의 묘미로 느끼는 사람과 리스크로
느끼는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두 갈래의 결이 아마 섹스의 궁합을 가르는 데 큰 축이
된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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