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해서 소중함을 잊고 사는 것이 있나요?
대부분의 한국인에게는 화장실이 너무 익숙해서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할 겁니다. 그런데 세계에는 기본적인 위생시설(화장실, 변소 등)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이 24억 명이 넘는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i]
여전히 9억 명이 길가나 하천 같은 야외에서 배변하고, 18억 명이 대변에 오염된 물을 마십니다.[ii] 실외에서 대변보는 사람들은 설사병, 콜레라, 수인성 전염병 등의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고, 노상 배변이 흔한 지역에서 자라는 어린이는 발육부진에 의해 정상적인 성장 단계를 밟지 못하고,[iii] 매일 천 명에 가까운 유아는 지저분한 위생 상태로 인해 죽습니다.
위생시설의 부재는 안전하게 ‘쌀’ 권리뿐만 아니라 깨끗한 물을 마시고 씻을 수 있는 기본 인권까지 박탈합니다. 이런 전 세계적인 위생 위기를 인식하고 개발도상국의 화장실 보급을 늘리기 위해 UN은 세계화장실기구의 창립일을 따서[iv] 2013년부터 매년 11월 19일을 화장실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2015년 UN총회에서는 ‘2030 지속가능발전 의제’ 아래 17개 목표를 제시했고, 그중 하나로 “Clean Water and Sanitation”을 설정하기도 했습니다.[v]

(출처: UN SDGs)
화장실의 부재, 누구에게 더 치명적인가
위생시설의 부재는 모두에게 치명적이지만, 여성에게 더욱 타격이 큽니다. 사회적 통념과 더불어 구조적인 차이로 남성에게는 노상 방뇨가 쉬울 수 있지만, 여성은 소변보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범지구적인 관습에 구속되기 때문이죠. 외진 장소를 찾지 못하는 여성은 낮이 아닌 밤에 용변을 ‘몰아서’ 보기를 선택합니다. 인권감시기구의 인터뷰에 따르면 한 여성은 “낮에는 웬만하면 용변하러 갈 필요가 없도록 음료수를 마시지 않는다”고 했죠.[vi] 어둑한 밤에 혼자만의 공간을 찾아 나서는 여성들은 빈번히 성폭력 피해자가 되곤 합니다.[vii] 게다가 소변을 오래 참으면 방광염과 요로감염에 걸리고, 물을 너무 적게 마시면 탈수증과 만성변비에 걸리는 위험도 무릅써야 합니다. 일상적인 생리현상을 해결하기에는 큰 리스크와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죠.

Sanitation Crisis (세계 위생 위기) 해결에 나서다
모든 사람이 위생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많은 국제기구가 제3세계의 화장실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UN에 따르면, 화장실 같은 기본 위생 시설에 $1을 투자하면, $5 수준의 의료 비용이 절약된다고 합니다.[viii] 모든 존재의 성 건강을 지향하는 체레미 마카도 2022년 화장실의 날을 맞아, 제3세계에 화장실을 축조하는 ‘the Cycle’에 후원하며 sanitation crisis에 힘을 보탰습니다.

제한된 상황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화장실을 공급하기 위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런던 소재의 Loowatt(루와트)[ix]는 ‘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후원을 받아 물 없는 변기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식수도 부족한 지역에서 변기 한 번 내리는 데 9리터의 물을 소모할 수는 없죠.[x] 루와트는 분뇨에서 병원체를 제거하고 물과 영양소를 전기자원으로 재생할 수 있는 ‘폐쇄형 루프’ 솔루션을 제안했습니다.[xi] 큰 재단의 지원을 받아 루와트와 같은 발명품이 탄생하고 실제로 구현된다면 머지않아 전 세계인의 기본권이 보장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에 필요한 화장실은 어떤 형태인가
위생시설의 부재는 비단 저소득국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비뇨부인과 질병은 공중화장실 폐쇄에 비례하여 증가해왔고, 월경 중에 탐폰을 교체할 수 있는 화장실이 없는 경우, 월경용품으로 인한 독성쇼크 증후군에 걸릴 확률이 증가한다[xii]는 당연한 연구 결과가 말하고 있죠. 여성 인구의 20~25%는 가임기 여성입니다. 이들은 생리대든 탐폰이든 생리컵이든 월경용품을 갈 화장실이 필요하죠.
한국에서는 화장실이 없어서 가지 못하는 인구는 적을 겁니다. 그렇지만 화장실에 갈 수 있다고 위생적인 생리활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렇다면 더 나은 화장실 생활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화장실은 어떤 모습일까요?
에디터는 성중립 화장실, 여자 화장실, 휠체어 이용자용 화장실, 어린아이의 키에 맞춰진 화장실이 모두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자 화장실은 아래 세 가지 조건을 만족했으면 좋겠어요.
- 월경컵을 위생적으로 갈 수 있도록 한 칸 안에 변기와 세면대가 함께 있을 것
- 벽과 문에 불법촬영 카메라를 설치할 수 없는 재질일 것
- 옆 칸을 훔쳐볼 수 없도록 위아래가 막힌 구조일 것
여러분이 바라는 화장실은 어떤 모습인가요?
우리에게 필요한 화장실을 상상해보고, 그 모습을 댓글로 공유해주세요!

[vi]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2020), 보이지 않는 여자들, 웅진지식하우스, p.78
[xii]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앞의 책, p. 81
2022-11-17